"얼른 좀 와줘."
키레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발걸음이 급해졌다.
아주 오랫동안 입원해 계신 아버지의 간병을 하시던 어머니의 전화였기 때문이다.
얼른 하던 일을 정리하고, 퇴근하자 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키레네는 와이프에게 전화를 하여서, 아이와 함께 외출준비를 해달라고 했다.
이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신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막내 손자를 한 번 더 보여드리는 것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한 키레네는 서둘러 와이프와 아이를 태우고, 곧바로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금요일 저녁에, 병원이 있는 신촌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주차장이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보니, 키레네의 아버지는 여전히 힘든 상태셨다.
희귀 암 말기로 인하여 모든 장기들이 온전치 못하셨다.
그래도 눈을 뜨고, 손자에게 눈인사를 하셨다.
"오늘 밤 동안, 네가 좀 아버지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
몇 년 째, 특히 최근 몇 달 간은 제대로 주무시지 못한 키레네 어머니의 부탁이셨다.
병간호로 쪽잠을 주무시고, 또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 치료의 번거로움을 다 감당하신 분이셨다.
그렇게, 키레네는 오랫만에 밤 간병을 하기로 했다.
어머니를 먼저 댁으로 가셔서 좀 주무시라고 보내고, 와이프에게 잠시 병실을 부탁했다.
저녁 요기 거리와 어머니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좀 구입하러 가야만 했다.
키레네는 아이와 함께, 병원 내부의 편의점을 갔다.
아이는 무슨 일인지, 무슨 상황인지를 통 모르고,
그저 아빠와 편의점에 간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키레네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아빠! 아빠는 내가 좋아요?"
아이의 질문에 키레네는 무척 당황했다.
순간적으로 머리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아이가 한 단어, 한 단어 말을 배우기 시작한 때 부터의 모든 순간이 압축되어 스쳐지나갔다.
최근에 아이와 나누었던 대화들의 내용이 주루룩 영화처럼 지나갔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아이에게 사랑한단 말을 한 적이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을.
그저 마음속으로는 사랑한다고 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는 것을.
"그럼 엄청 좋아하지~"
"아니에요"
아이의 대답에 키레네는 더욱 당황하였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은 더 놀라웠다.
"내가 더 엄청 좋아해요, 아빠"
살얼음처럼 불안해서 어쩔 줄 몰랐던 키레네의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니야~ 아빠가 더 사랑해"
"아니에요~ 내가 더 아빠를 사랑해요"
"아니야~ 아빠가 더 엄청 엄청 사랑해"
"아니에요~ 내가 더 엄청 엄청 엄청 엄청 사랑해요"
키레네와 아이는 엄청이라는 단어의 횟수를 점점 늘려가며 말 장난을 이어갔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게 될 때 까지.
그 날 이후로, 아이는 키레네에게 아주 많이 마음을 열어주었다.
말과 행동에 아주 큰 변화가 있었다.
키레네를 밀쳐내고 엄마와만 무언가를 하려는 떼가 눈에 띄게 줄었으며,
아빠와 함께하는 목욕이나 낚시가 엄청나게 즐겁다고 표현하는 빈도가 늘었다.
아이 덕분에, 키레네는 깨달았다.
아이에게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아이와의 관계가 훨씬 발전하도록 이끌어준 그 깨달음은,
키레네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주신 마지막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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